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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구 화가 작품아카이브
2024년 새해의 시작. 문득 널리 알려야 하는 중요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먼저 기록하고 남길 것을 생각하자마자 고민 없이 안성으로 차를 몰았다.
2020년부터 안성 작업실을 다니며 이성구 화가의 제자로 입문할때 부터 생각했던 프로젝트를 4년 만에 시작하기로 했다.
이성구 화가의 작업실은 방대한 작업량만큼이나 남길 이야기가 많아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시작을 2006년으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성구 화가는 홍익대에서 서양화 작업을 하다가 일본 유학을 계기로 판화를 배우게 됐고, 그 이후 회화와 판화를 해 왔다. 왕성하게 작업하던 중 건강에 적신호가 오면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왔고, 화학재료들이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건강을 찾으면서 작업할 수 있는 소재를 찾다가 건강에 해가 없는 재료를 우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날 고서점을 갖다가 옛날 고서 책을 몇 권을 샀는데 거기에서 인상 깊은 기법이랄까? 보존법 이런 게 눈에 들어온 거예요. 개인적 생각에는 옛날에는 아마 책을 오래 보존하려고 옻칠을 한 것 같아 거기에 영감을 받아 칠에 대한 작업을 한번 해 봐야 되겠다"
그 이후 천연재료를 찾게 되었다. 옛날 책들 보면 색을 천연염료로 칠을 했다. 당시에 조선시대에는 천연염료가 제일 싼 재료였을 것이다. 오히려 안료나 이런 화학재료는 중국에서 수입을 했을 것이고 궁이나 특별한 계층에서만 화학재료를 사용했을 것이다. 우리 궁중화들을 보면 안료나 석채로 그린 그림 들이었다.
하지만 민화를 보면 천연재료로 그렸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까치와 호랑이같은 민화도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천연재료 천연염료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란색을 낸다든지 이런 황톳빛 정도 하면 황백(황벽나무 피)이라는 한약재에서 나오는 재료고, 우리가 잘하는 치자라든지 아주 노란색을 낼 때는 홍화씨를 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재료들로 서민들 한복이나 이런 곳에 천연 염색을 했다.
종이도 천연재료를 발라 마음대로 코팅을 하지 않았나 한다.
"옛날에는 콩이란 재료를 또 많이 다뤘던 거 같아 콩이 먹는 거잖아."
두부 만들고 나면 비지가 생기고 비지 자체도 콩의 일부이고 먹는 두부는 삶았지만 작업하는 콩은 삶지 않고 불렸다. 물에 불린 후 추출하면 기름 물, 수성 기름이 되는 것이다. 물을 증발을 시키고 놔두면 진해진 상태, 현재 우리가 말하는 수성 바니시 같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옛날에 선조들은 그걸 알았던 것이다. 종이가 기름종이처럼 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상당히 중요한 방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 1450년 ‘서민의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담은 책’이라는 의미의<산가요록>은 의관(醫官)으로 봉직한 전순의(全循義)가 편찬한 종합 농서다.
작물, 원예, 축산, 양잠, 식품 등을 총망라하는 만능 사전인데 그중에는 겨울철에 채소를 가꾸는 ‘동절영채(冬節養菜)’를 설명하고 있는 편이 있다. 우리나라 왕실 왕실에서는 그 겨울 하우스 안에서 열매를 키웠다고 한다. 옛날에 유리가 없었으니 바로 기름 성분 종이로 유리를 대신했고,유리를 대신할 정도의 강한 보존력을 가진 한지를 그림에 적용 할 수 있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2002년 한지작업을 하기시작했다.
2002 년도에 본격적으로 1년은 작업 결과를 못 냈다. 재료 구입하고 작업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콩을 불리고 맷돌로 갈아 그걸 갖다가 짰다. 콩 짠 물을 갖다가 문지르는 콩댐을 반복하면 기름종이 같은 밑 작업이 된다. 처음은 그 밑 작업의 결과가 예쁘게 나오니까 스톱을 했다. 이 자체가 처음에는 자극이었고 작품이 됐다.

종이에서 나오는 그런 맛들이 상당히 무게감도 있고 유럽 사람들이 좋아했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금방 정성 들인 작품임을 알아봤다. 콩물을 계속 바르는 작업 콩물이 연하니까 뭐 많게는 한 20번 이상 반복해서 얻은 결과물이었다. 마르면 칠하고 마르면 칠하다 보면 점점 기름종이로 변했다.

작업의 방향을 천연재료를 사용한 회화로 전향을 하고 콩댐과 밑 작업 종이에 대한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제대로 안착된 본격적인 첫 작품으로 고구려 벽화나 고분 천정에 천체도 같은 이미지에 있는 별자리 그런 걸 착안해서 별자리를 그렸다. 그리고 서양 별자리가 아닌 조선시대 때 관찰한 별자리 천문도를 참고하여 이 시기에 원하던 밑 작업이 된 종이에 별자리 작업을 상당히 많이 했다.
작품에 대한 한 가지 의문점이 들었다. 별 하면 반짝이는 이미지 밝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블랙 바탕에 화이트 점을 올리거나 노란색이라든가 이렇게 생각을 할 텐데 검정이 별인 게 재밌고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궁금했다
"별 하면 별은 이제 밝잖아요. 밝은 별은 우리 눈에 보이는 거고. 그 밝은 별을 그리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그게 맞는 건데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해 보고 싶어 여러 생각 중에 우연하게 역으로 카메라에서 네가티브 필름이 떠올랐어요 검은색으로 작업해도 종이하고 잘 맞을 것 같다 생각돼서 검은색 별을 표현하기 시작했어요."

건강과 개인적인 여러 이유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판화 작업을 잠시 쉬고 안성으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삶의 방식이 단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도 독창적인 미니멀리즘으로 변화해 갔다.
작가가 생각하는 미니멀리즘은 꼭 단순해야지 미니멀리즘은 아니라고 한다. 최소의 의미보다는 모든 걸 다 버리는 수행 같은 다 배제하고 오로지 나에 집중하는 그런 과정이다. 평소에 영감을 주는 소재와 모티브는 다양하게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잡다하게 모인 모티브가 정신적인 미니멀리즘과 만나면 작업이 잡다하게 나올 수도 있고 단순하게도 나올 수 있다.

좌불하는 부처의 형상은 작가의 모습이 투영됐다. 종교하고는 상관없이 고조선 시대 때 보면 좌불 하는 토우 인형이 많이 나온다. 그러니까 당시부터 명상, 도나 수련 이런 것이 강했던 것 같다 그런 것에 끌려 그 방향으로 가게 됐다. 부처의 형성을 하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별자리 작품이 많고 그 시리즈가 대략 한200~300점 정도 제작됐다.

2002년 당시에 한 화방에서 1960년대 화방 시작할 때 사놓은 한지가 발견됐다고 연락을 받아 좋은 한지를 구매하게 되었다. 그게 본격적 한지 작업의 시작이었고 대략 300점을 끝으로 결국 양질의 종이를 구할 수가 없어서 종이작업 시리즈가 멈추게 되었고 향후 천 작업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This document was last updated on May 6, 2024.